금요일, 홍대 비 스윗 온(Be Sweet On), 마스터의 역할

금요일날 동생과 고엔 2호점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피곤했던 한 주를 달콤이로 보상받고자 근처 새로생긴 디저트 카페 비 스윗 온에 들렀다.

티라미스도 크림브륄레도 타르트 타탱도 다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라 잔뜩 기대를 하고 갔고, 붐빌까 걱정했는데 안쪽 두 테이블 중 한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 레몬 소르베 에이드와 티라미스와 아포가또, 크림브륄레를 시켰다.

정말 맛있었다. 마스카포네 치즈가 듬뿍 든 티라미스는 초창기의 소노에서 제니스 카페테리아로 이어졌던 그 티라미스만큼이나 맛있었고, 크림브륄레도 적당히 달고 진하면서 향긋했고 혀에 깔끔하게 감기면서 딱 좋게 여운이 남았다. 곁들여진 파이도 파삭한 식감에 풍부한 버터향이 딱 좋았고 전혀 시지 않게 조려진 과일도 좋았고 새큼한 소르베가 들어간 레몬에이드도 탄산이 과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산뜻했다. 전체적으로 좋은 재료, 과하지 않은 단맛, 균형잡힌 향미가 굉장히 좋았다. 먹는 내내 행복했고 입가심으로 핫초콜릿이나 커피를 한 잔 더 시켜서 먹고 나오고 싶었다.

바로 옆에 앉아있던 젊은 여성 두 명이 귀가 아플 정도로 떠들지 않았다면 말이다.

소음이 지나치게 과했고, 떠드는 내용 자체는 '동인적인' 이야기.

나 스스로 동인녀임을 부끄럽게 생각할 때가 이럴 때다.

동인녀가 부끄러운 일은 아닐 지언정, 그걸 일반적이고 공개된 장소에서 온 사방에 대고 떠들어 대는 건 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전혀 상관 없는 다른 사람들 귀에 왕왕 울리도록 말이다.(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에스카플로네가 비운의 작품이 되었던 건 에바와 나데시코 때문이 아니라 에바와 슬레이어즈 때문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평소같으면 동생이나 나나 '죄송하지만 조금 조용히 해 달라'고 요청했겠지만, 그날따라 둘 다 너무 기운이 없었고 피곤했고 말싸움할 여력도 없어서 그냥 조용히 눈짓하고 일찍 자리를 떴다. 소음의 수준은 귀가 울리고 두통이 일어날 정도.정말 기운이 대단했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맛있는 디저트로 충분히 업될수 있었던 기분을 더욱 다운시킨 두 명의 여성이 계속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홍대역까지 걸어가면서,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두 명은 이야기에 정말 정신이 팔려서, 자신들이 얼마나 큰 소리를 내고 있는지, 주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었으나, 즉석에서 항의하지 못하고 나와서 투덜거린 우리도 비겁하다.

그런데 카페 마스터의 소임은 어디까지인가? 주문을 받고 맛있는 메뉴를 제공하면 그것으로 끝인가?
그 자리엔 여직원 한 분과 사장님 형제분, 다른 남직원 한 분이 있었다.
먹는 내내, 그 자리에 있는 내내, 계산을 마치고 가게 문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 좋은 기분을 유지하게 서포트할 의무는 없나?

네 분 중 어느 분도 그들을 제지하거나 조금만 목소리를 낮춰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손님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기가 어려웠을까?
가게 안에 다른 손님이 없고 네 분이 참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다른 손님들이 있는 경우에는?

오는 손님들 중 압도적으로 그 바닥(?) 사람들이 많은 찻집으로 이대 앞 티**이 있다.
모여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면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그건 당연하다. 하지만 다른 손님들의 대화를 방해할만큼 목소리가 높아진다면, 그건 곤란하다. 그 정도가 되면, 마스터가 나선다. 엄연히 카페를 관리하는 마스터가 있는 상황에서 손님들끼리 얼굴붉히는 것이 좋은 상황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마스터는 그 테이블로 다가가 조용히, 정중하게 조금만 목소리를 낮춰주실 수 있겠냐고 말한다. 그런 상황을 몇 번이나 보았고, 나도 한 번 그런 적이 있다. 죄송하다고 말하고 바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지적해 줄 때 얼굴을 붉히며 사과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화를 내거나 일어나는 손님은 본 적이 없다.

손님이 갖추어야 할 매너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카페를 관리하는 마스터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면서 집에 왔다.

다음에 또 한 번 그런 일이 있게 되면, 그 때는 마스터에게 항의해야겠다. 비 스윗 온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그 다음에 내리게 될 것 같다.

by 윈드라이더 | 2009/06/14 20:41 | 이러쿵저러쿵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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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6/15 02:1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윈드라이더 at 2009/06/16 07:56
네, 정말 맛있엇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맛있으면 다 되지!'하는 분위기가 아닌, 더 신경쓰는 조심스런 분위기였구요. 그래서 더 안타깝게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다행이네요. 다음 번에는 더 행복한 기분으로 다녀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안 가고 말기엔 너무 맛있는 곳이라서요^^;
Commented by kisa at 2009/06/15 19:15
진짜, "내 맘이지"라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그럴 때가 있지요. 그런 사람들은(나를 포함해서) 목소리를 낮춰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깜짝 놀라고 미안하다 사과할 텐데요.
물론, 대부분은 자유와 방종의 차이를 초등학교 때 못 배운 사람들이겠지만요... - _ -
Commented by 윈드라이더 at 2009/06/16 07:59
...아 그치. 우리도 조곤조곤 떠들다가 갑자기 목소리 확 높아질 때 있고. 하지만 그래도 제발 좀...ㅠㅠ 요새 너무 조용한 분위기에서 살아서 그런가. 아무튼 다음에 같이 가자! 여기하고 또 다른 곳하고, 아가씨 모실 곳은 언제나 넘쳐난다우.
Commented by 아가페 at 2009/08/08 02:43
아직 그 찻집이 있구나. 마스터 살아계신지(...) 한번 가봐야 할텐데 OTL

이 가게는 홍대갈때 한번 가봤는데 괜찮았음. 레몬셔벗이 꽤 시었던게 내 취향이어서.. 'A'
Commented by 윈드라이더 at 2009/08/14 10:59
ㅇㅇ. 살아계시다는-_-;;
나는 당장 네놈이 살아있다는 게 확인되어 기쁘구나.
다음에 갔을 때는 만석이었는데도 그리 시끄럽지 않아서 즐겁게 쉬다 왔어.
여전히 맛있더라구 >_<

건강하게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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